911 테러와 탄저균 테러로 인해 달라졌던 전경 생활

2001년 9월 12일 새벽이었을겁니다. 당시 경기도의 한 경찰서에서 전경 근무를 하고 있던 저는 평상시대로 내무반에서 곤히 잠을 자고 있었는데 뭔가 소란스러워 깨보니 TV가 틀어진 상태로 있더군요. 주변을 보니 분대장님과 일찍 잠을 깬 일부 대원들이 TV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잠에서 덜깬 표정으로 뭔데 저렇게 뚫어지게 보시나 했는데, 분대장님께서 말씀하시길 비행기가 미국 쌍둥이 빌딩에 부딪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해도 그냥 경비행기가 날아가다가 실수로 부딪혔나보다하고 생각했죠. 뒤늦게 깨어난 다른 대원들도 건물에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는 모습만 보고있었는데 다들 ‘그러한가보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더 지켜보니 왠 대형 항공기가 세계무역센터에 날아가더니 그대로 들이박아버리더군요. 그때 그걸 보고 있던 분대장님 이하 시청을 하고 있던 전 대원들의 반응은 “………어?” “???????????????” 였습니다. 사람이 뭔가 엄청나게 충격적인 것을 목격했을때 사고회로가 정지되고 멍해진다는 것은 아마 그러한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일 겁니다. 분대장님께서는 한 5분 뒤에나 정신을 차리고 탄식을 내뱉으셨고, 대원들은 계속 정신 못차린채 TV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이쯤되면 국내도 당연히 비상상황이었고, 경찰서 상황실 팩스를 통해 경찰청의 지침하달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본청도 난리가 난 모양이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기밀사항이라 이야기 하기 힘들지만 이후 경찰청 및 경찰서는 한동안 대테러 방지 공문에 파묻혀 살아야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 이후 터진 미국에서 터진 탄저균 테러였습니다. 911에 이어 터진 탄저균 테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백색가루 공포라는 신조어까지 나오자 경찰청 측에서는 전경을 대상으로 탄저균 관련 대테러 훈련을 실시토록 하였습니다. 이때 경찰서에서는 일을 만들어서 하신다는 서장님과 분대장님의 근성이 절묘하게 맞물렸는데, 덕분에 몇 개월간의 장기간 훈련에 돌입했고, 물자가 부족한 우리는 낡은 방독면과 우의, 마미손 고무장갑을 뒤집어 착용한채 미치도록 훈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탄저균 방지 장갑으로 사용한 고무장갑?>

이 과정에서 시내 한가운대에 백색가루로 보이는 것이 다량 발견되었다는 112신고를 받고 서장님의 직접 지시하에 타격대가 급히 출동한 적도 있었는데, 가보니 밀가루 포대가 엎어진 것이었던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뭐 훈련한대로 열심히 수거는 했지만 전 경찰서 직원과 대원들 모두 짜증은 이루말할 수 없었습니다. (밀가루인거 뻔히 알면서 신고한 놈은 삼대에 걸쳐 밀가루만 쳐먹으리라)

물론 이러한 노력과 해프닝들은 결국 경찰청 검열에서 좋은 결실을 맺게 되었는데, 당시 같이 대테러 방지 검열을 받은 경찰서 중 제가 속했던 경찰서가 가장 우수한 경찰서로 선정되는 쾌거를 얻기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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