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어머니께서 전해주시는 일제시대 이야기

오늘은 8월 15일 광복절이네요. 오전에는 광복절 기념하여 2차 세계대전, 일제 시대에 대한 방송을?많이 해줬는데, 그래서 그런지 외할머니와 어머니께서 전해주신 일제시대 이야기가 참 많이 생각납니다.

 

일본군은 우리가 알던 그 모습이었을까?

저희 외가쪽은 대덕에?자리잡고 있습니다. 외할머니께서는 2001년, 90세가 넘은 연세에 돌아가셨는데, 글까지 배우신 양반댁 규수셨습니다. 저에게 동의보감을 읽어주실 정도로 학식이 높으셨죠.

93년 대전엑스포의 열기가 한참 절정일때, 온가족이 엑스포 관람을 마치고 대덕에 있는 외가로 향했고, 저는 그곳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저는 외할머니께 일본 식민지 시대에 대해서 여쭤봤던 기억이 납니다. 전부 기억이 나는 것은 아니고 또렷히 기억나는 것은 한가지 질문이었는데, 바로 해방 될때 미군과 일본군이 서로 마주쳤을텐데 어땠냐는 것이었죠.

과거 정보?매개체가 활발하지 않았던 시기에?일본군 하면?무모하게?죽을때까지 싸우다가 마지막에는 전원 자결(옥쇄)하는 걸로 많이들 알고 계셨을 겁니다. 중학생이었던 저또한 그렇게 알고 있었고, 한술 더떠?어이없게도 우리민족을 발밑에 두고 자기 목숨 그렇게 내던지는 그들이 좀 대단하다는 인식이 깔려있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외할머니께 들은 일본군에 대한 이야기들은?알고 있던 지식과 인식들을 한번에 뒤엎기 충분했습니다.

해방이 되고 미군이 한반도로 진주했을때, 외할머니께서는 미군과 일본군이 싸우는 걸 직접 보셨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다만 총격전은 아니었고,?칼을 들고 싸웠다고 하시면서 일본군인이 미군에 맞서?힘으로 안되자?도망쳤다고 하시더군요.?저는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일본군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인지라 어이가 없어서 재차 여쭈었더니, 겁을 먹고는 칼까지 버리고 내뺐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야기 듣는 순간?그 당시?알고 있었던 지식과 인식들이 붕괴되면서 할말을 잃어버리게 되더군요. 일본군인들은?죽을때까지 싸운다고 알고 있었던 지식이 1차 붕괴었고,? 근대 들어서부터 아시아인이 서양인에게 뒤쳐졌지만 정신력과 용기?만큼은 안뒤질거라고 생각했던?인식이 2차로 무너졌죠.?성인이 되고나서는 ‘사람은 다 똑같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인터넷이라는 매개체 덕분에?여러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기에 지금까지 알려져 있던 일본군에 대한 인식과 정보가 과대포장 되어있다는 것을?알게 되었기에?할머니께서?이야기 해주신 것에 대해 쉽게 수긍할 수 있었지만, 그당시?중학생이었던 저에게는 굉장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물론?성인이 되어서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들도 있었습니다. 역사 프로에서는 공식적으로 미군이 진주함에 따라 일본군은 무장해제를 순순히 받아들였다고는 하는데, 외할머니의 증언에 의해 모든 곳이 그러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순순히 받아들였다면 대덕에서 미군과 일본군이 서로 무기를 들고 싸우는 일 따위는 없었을테니까 말이죠.

 

일본의 수탈은 어땠을까?

이 이야기는 외할머니께서 어머니께 전해주신 이야기인데, 일본군은?한때 식량난에 시달려?먹을 수 있는건?전부 수탈해갔다고 하시더군요. 돼지, 논을 일궈야 했던 소까지 끌고 갔다고 하더군요.?물론 값은 치뤘다고 합니다. 돼지, 소 값으로 양철통 하나 던져줬다고 하시더군요. (ㅡ.,ㅡ;)

일본군이?대덕까지와 그정도 수탈을 하고 갈 정도라면?그당시 일본군의 식량란이 엄청나게?심각했었다는 이야기가 되겠는데, 그 시기에 대해 추리를 해보면?물자가 부족해지기 시작하던 태평양 전쟁시기, 그것도 국내?대흉작이 있었던?1942년과 1944년중 물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했졌던 1944년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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